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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의학자] 코흐 3 :: 2009/03/17 12:05



              

여하튼 코흐는 탄저균 발견으로 유명해지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궁핍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세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미생물과 세균을 염색하여 현미경 사진을 찍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것 역시 세균학에서의 획기적인 진전으로 세균학을 다시 한 차원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사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 살인적인 벌레들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동시에 현미경을 볼 수가 없고 또 하나의 세균을 보고도 두 사람이 똑같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러나 사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므로 열 사람이 그것을 연구해도 동일한 의견에 이를 수 있다.’

1877년 코흐는 세균에 대한 연구·보존법·사진술 등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현미경사진으로 발표된 연구논문에서 그는 유리 슬라이드 위에 세균의 얇은 막을 만드는 방법과 이것을 약한 불로 고정시키는 방법을 서술했다. 그는 또한 유리 슬라이드에 있는 배양액 한 방울에서 미생물을 키울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방법인 현적배양(顯滴培養 hanging-drop technique) 방법과 기구들을 고안했다. 1878년에는 상처감염의 원인에 대한 실험을 요약하여 발표했는데, 다양한 재료에서 얻은 물질을 동물에게 접종하여 각각 다른 특정한 미생물에 의해 6가지 종류의 감염증을 만든 후, 이 감염을 접종을 통해 여러 종류의 동물에게 주입시켜서 원래의 6가지 감염증을 다시 만들었다. 이 연구에서 그는 숙주가 다른 종(種)이면 병원성도 달라진다는 것을 관찰했으며 동물의 몸은 훌륭한 세균 배양기가 된다는 것을 밝혔다. 또한, 창상감염증(創傷感染症)·재귀열(再歸熱)에 관한 연구도 하였다.

1880년 독일 정부는 코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베를린국립보건연구소>의 소장으로 임명한다. 초등학교 야구선수가 메이저리그 선수로 등록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교될 만큼 그의 임명은 파격적이었다. 코흐는 37세에 비로소 자신이 완성한 일에 합당한 연구 시설, 두 명의 조수 및 풍족한 연구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흐가 연구소를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모여드는 중심지로 자리 잡도록 유도하자마자 단기간에 실적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학자들이 발견하려고 애태우던 결핵균 병원체의 발견에 도전했다.

당시 결핵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 원인이 어떤 종류의 미생물임에 틀림없다는 것뿐이었다. 왜냐하면 결핵은 병든 사람에게서 건강한 동물에게로 전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슬라우의 콘하임 교수는 폐병환자의 병든 폐 조직을 토끼 안구의 전실에 넣으면 결핵에 걸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코흐는 콘하임 교수의 실험을 자세히 연구했다.

그가 다른 학자들보다 빨리 결핵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시료 조직을 강력한 염색액으로 염색하는 기술을 익혔기 때문이다. 드디어 코흐는 죽은 파란색으로 염색된 폐 세포 사이로 작고 아주 가는 간균들이 모인 이상한 덩어리를 발견했다. 일직선으로 된 탄저균과 같은 모양이 아니라 조금씩 구부러져 있었다. 더구나 그것들은 너무나 가늘어서 1만 5000분의 1인치도 안 되었다. 코흐는 전형적인 독일인답게 매우 신중하고 철저한 사람이었다. 조수들이 결핵균을 발견한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음에도 그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코흐는 곧바로 자신의 발견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론에 착수했다.

우선 코흐는 죽어 가는 실험동물들의 몸에서 간균을 분리한 후 그것들을 쇠고기 추출액으로 만든 고형배지 위에서 기른 뒤 그 균의 순수 집락을 얻었다. 그것을 다른 균과 격리시켜 수개월 동안 배양한 뒤 건강한 동물들에게 접종하자 동물들이 결핵에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서 실험용 동물들이 결핵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코흐는 자신의 실험이 실패한 원인으로 결핵균이 살아 있는 동물의 몸속에서만 자란다고 추측했다. 소위 결핵균은 완벽한 기생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유명한 배지인 혈장 젤리를 발명하여 보통 배지에서는 자리지 않는 까다로운 미생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의 예측은 놀랍게도 정확하게 들어맞아 결핵에 걸린 원숭이와 황소, 기니피그에서 얻은 치명적인 간균을 43종이나 혈장 젤리 시험관에서 배양했다. 그 균을 건강한 동물에 주사했고 건강한 동물들은 결핵에 걸렸다.

코흐는 드디어 결핵균을 발견했다고 확신했다. 그럼에도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코흐는 사람들이 먼지 속에 있는 균을 흡입하거나 혹은 결핵 환자들의 기침 때문에 결핵균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건강한 동물도 그런 경로로 병에 걸리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실험은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코흐 자신이 결핵에 걸릴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는 결핵 환자의 기침으로도 결핵균이 옮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코흐는 결핵에 걸리지 않았다. 1882년 3월 24일 코흐는 베를린의 생리학회에서 그가 모든 종류의 결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결핵간균을 분리해서 배양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결핵의 날’은 1882년 3월 24일 결핵균을 발견한 코흐를 기려 만든 날이다.

한편 코흐는 이집트에 콜레라가 출현하여 유럽에 전파될 위험이 생기자 독일 정부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이 병의 연구를 위해 자신의 연구를 잠시 중단하고 이집트로 가게 되었다. 그는 쉼표 모양의 간균이 콜레라의 원인일 것이라고 추정했으나 콜레라의 유행이 이미 그친 상태였기 때문에 더이상 연구를 진척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메바성 이질의 원인과 이집트결막염의 2가지 변종의 원인이 되는 간균을 발견했다. 그는 콜레라가 풍토병인 인도로 가서 그의 임무를 완수했는데, 콜레라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을 발견했고 그것이 식수·음식·의복 등으로 전파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것이 1885년이다.

같은 해 베를린대학(Imperial Health Office) 위생학 교수로 임명되어 결핵의 치료약 연구에 몰두하여 1890년에는 결핵균에 대한 항원인 투베르쿨린을 창제하였다. 이것은 당초에 그가 기대했던 효과는 거두지 못하였으나, 결핵치료약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는 당시 세계 의학계를 몹시 흥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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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에 대한 연구를 재개했을 때 코흐는 죽은 간균을 살아 있는 결핵균을 투여받았던 사람에게 주입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가에 대하여 연구했으며, 주입 결과 나타나는 국소적 반응으로 결핵을 진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 단계에서는 치료도 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 연구에서 결핵균 배양에서 만들어진 무균의 액체를 사용했는데, 이 액체(투베르쿨린, 1890)는 원래 결핵 치료약을 목표로 했으나 치료 효과는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고 심지어 투약한 환자의 경우에는 결핵이 아니라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나 과거에 앓았던 결핵을 조사하는 수단으로서의 중요성은 지금으로서는 큰 업적이지만 그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코흐는 말년에 결핵에 관한 몇 가지 연구를 더 했으나 투베르쿨린이 실패한 이후에는 주로 나병·우역(牛疫)·선(腺)페스트·텍사스열병·말라리아 등 동물과 인간의 광범위한 질병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말라리아의 전염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코흐는 그것이 모기를 통해서 전염된다고 결론지었는데, 영국의 세균학자 로널드 로스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발견들을 발표하자 자신의 결론에 대하여 만족했다. 1901년 인간의 결핵균이 가축에 병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사람이 소의 결핵균에 의해 감염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이에 대한 어떠한 조처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결론은 유럽과 미국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거부되었는데, 부분적으로 틀렸다고 증명되기는 했으나 코흐의 이론은 이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켰다. 성공적인 예방조처들은 대부분 코흐에 의해 만들어진 방법들이다.

1904년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가서 아프리카 재귀열의 병원체와 전염경로를 밝혀 냈다. 체체파리(tsetse flies/Glossiniidae)에 의해 매개되는 병의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여, 1906~1907년에 수면병(睡眠病)에 관한 뛰어난 연구를 발표하고 동시에 이의 치료법도 밝혔다. 1908년에는 세계 여행으로 동양에 체류하기도 했다.

1905년 결핵균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상 수락연설 마지막 부분이다.

‘The struggle has caught hold along the whole line and enthusiasm for the lofty aim runs so high that a slackening is no longer to be feared. If the work goes on in this powerful way, then the victory must be won.’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노력은 그 기반이 확고하게 마련됐으며 그러한 고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열정은 강하기 때문에 (치료법이) 조금 늦는다고 해도 더 이상 무서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만약 그러한 노력이 오늘날처럼 강력하게 추진만 된다면 승리는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1910년 5월 27일 바덴바덴에서 협심증으로 사망하였다.

주요저서에는 《Aetiologie der Wundinfektionskrankheiten》(1878), 《Bubonenpest》(1898), 《Bekampfung des Typhus》(19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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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참고 문헌

1. 《유한준 과학이야기, 과학을 빛낸 사람들 3》/유한준 글, 신혜원 그림/도서출판 산하

2. L. G. Stevenson 글 | 金玉珠 옮김

3. 과학자의 명언과 영어공부| (94) :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코흐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4. Science Times - 로베르트 코흐 - 이종호의 과학이 만드는 세상-39

5. Naver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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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7 12:05 2009/03/1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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