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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의학자] 코흐 2 :: 2009/03/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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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71년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동안에 야전외과의로 잠시 복무하다가 당시 독일 땅이었던 볼슈타인 지역의 외과의가 되어 이곳에 작은 실험실을 만들었다. 그는 현미경, 조직을 얇게 자르는 기구인 마이크로톰, 집에서 만든 세균배양기 등을 갖추고 조류(藻類)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후에 병원미생물에 대해 연구했다. 그의 아내가 환자가 없어 적적해하는 남편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현미경을 선물한 것이 그의 인생을 세균학자로 이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종일 연구에 매달리고 있던 코흐에게 재혼한 젊은 아내 프라이베르크가 큰 돈을 들여 현미경을 선사한 것이다. 코흐가 현미경을 선물 받았을 무렵 유럽의 여러 지방에서 탄저병이 유행하고 있었다. 이 병에 걸린 양이나 소는 일단 감염되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죽었으며 사람들도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괴팅겐대학교에서 코흐의 스승이자 해부학자·조직학자였던 F. G. J. 헨레가 1840년에 감염성질환은 살아 있는 미세 유기체에 의해 일어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1850년에 프랑스의 기생충학자인 C. J. 다벤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혈액에서 유기체를 처음으로 관찰했으며, 탄저병으로 죽은 동물의 혈액을 건강한 양에게 접종하면 탄저병이 전염된다는 사실과 죽은 양의 혈액에서 막대기 모양의 미세한 소체들을 발견했다는 것을 보고했다. 1863년 다벤은 프랑스의 미생물학자인 L. 파스퇴르의 연구에 영감을 받아서 이러한 막대기 모양의 소체가 없으면 양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탄저병은 혈액 내에 이 유기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저병의 자연사(natural history)는 완전히 밝혀지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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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흐는 이런 보고들에 주목하고 탄저병에 대한 관심이 생겨 연구를 시작했다. 탄저병에 걸린 동물의 혈액을 실험용 쥐에 주사하자 쥐는 하루 만에 죽었으며 죽은 쥐의 혈액에서도 간상체를 다수 발견하였다. 간상체는 길게 실 모양으로 늘어서기도 했고 작고 둥근 모양으로 분리하여 포자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 세균은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성질을 갖고 있었지만 일단 포자가 형성되면 주변 환경에 대한 저항력이 강해져 어떤 상황에서든 견뎌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서 코흐는 자신이 만든 수수 배지에서 간상체, 즉 탄저균을 배양하는데 성공했으며 이렇게 배양한 균을 다른 동물에 주입하여 자신이 뜻한 대로 탄저병을 일으킬 수 있었다.

코흐는 탄저병이 탄저균이라는 특정한 병원균이 일으킨다는 사실을 입증했지만 대단히 신중하고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비슷한 실험을 몇 백 번이 넘도록 되풀이하여 탄저병에 걸린 동물의 혈액을 건강한 다른 동물에 주입하면 다시 탄저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두 번째 동물에서 채취한 혈액을 세 번째 동물에 주입하면 오히려 탄저병이 더 빨리 발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이런 과정을 거듭할수록 탄저균의 독성은 더욱 강해져 나중에는 탄저균이 혈액에 있는 다른 세균들을 거의 다 죽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계속하여 탄저균을 분리하고 배지에서 순수 배양을 하여 탄저균의 중앙부가 끊어지면서 분열⋅증식하는 양상도 파악했다. 또한 탄저균은 약하고 잘 죽지만, 그 포자는 저항력이 강해 공기 중이나 흙 안에서 오래 생존하며, 동물체 내에 들어가면 다시 세균이 되어 증식하면서 탄저병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즉 포자는 동물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생기지 않고 동물이 죽은 다음에만 나타나고 또한 동물이 따뜻하게 보존될 때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포자는 병을 옮길 수 있는 대상을 찾았을 때만 작동을 한다는 뜻이다. 즉 잠복해 있던 포자가 조건이 좋아지면 막대기 모양의 간균으로 자라서 탄저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1876년 5년에 걸친 자신의 연구에 확신을 가진 코흐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코흐는 세균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코흐의 정리’, 또는 ‘코흐의 공리’ (Koch’s postulations)를 제시했다. “한 질병에는 오직 한 병원체만이 존재한다”. 코흐의 이론을 후세학자들은 ‘특정병인론’ 이라 불렀다

“To establish that an organism is the cause of a disease, it must be:

- found in all cases of the disease examined

- prepared and maintained in a pure culture

- capable of producing the original infection, even after several generations in culture

- be retrievable from an inoculated animal and cultured again.”

한 생물체가 한 질병의 원인이라는 논리를 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설립돼야만 한다.

-같은 질병에서는 꼭 같은 생물체가 발견돼야만 한다.

-병원체는 순수배양 속에서 얻고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

-배양 속에서 수십 년이 지나도 처음과 꼭 같은 질병(감염)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실험용 동물로부터 병원체를 다시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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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특정한 병원체이다는 것으로, 콜레라를 일으키는 병원체는 콜레라균이고 결핵을 일으키는 것은 결핵균이다라는 주장이다. 그 시기에는 세균과 질병과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병원체가 신체 각 부위마다 여러 질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흐(Robert Koch)는 특정한 질병(specific disease)에는 분명히 특정한 원인(specific cause)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즉 특정한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특정한 병원체라는 것이다.

이 당시 코흐가 자신의 연구를 발표한 상황은 전설적이다.

코흐는 원래 학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홀스타인 지방에서 가난한 의사로 생활하면서 연구를 했기 때문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코흐는 1876년 브레슬라우 대학(현재는 폴란드의 브로츨라프)에 있는 학창 시절의 은사로 세균 분류의 권위자인 콘(Hermann Cohn, 1828〜1898) 교수를 찾아갔다. 코흐의 설명을 들은 콘은 코흐의 연구에 흥미를 가질지도 모르는 여러 명의 교수를 불렀다. 그 중에는 유명한 병리학자 율리우스 콘하임(Julius Cohnheim, 1839〜1884) 교수도 있었다. 코흐가 3일간에 걸쳐 여러 해 동안 실패를 거듭하면서 얻은 자신의 연구 내용을 설명하자 콘하임 교수는 젊은 연구생들이 있는 연구실로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미진한 점이 없이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나는 이것이 세균에 관한 것 중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생각하며, 이번이 젊은 로베르트 코흐가 뛰어난 연구로 우리들을 놀라게 하고 또 부끄럽게 하는 마지막이 아니리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때 코흐의 방으로 간 젊은 연구생 중에 한 명이 나중에 코흐의 제자가 되어 ‘마법의 탄환’이라고 불린 살바르산(606호)를 발견한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 1854~1915)이다.

코흐가 이 당시 교수들을 놀라게 한 또 다른 요인은 탄저병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제시했기 때문이다.

‘탄저병으로 죽은 모든 동물은 죽자마자 없애버려야 합니다. 만약 태워버릴 수 없다면 땅 속 깊은 곳에 묻어야 합니다. 흙이 차가워져 막대균이 강하고 오래 견디는 포자로 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876년에 먼저 포자의 발견을 발표한 콘도 크게 감명을 받아 코흐의 획기적인 논문의 출간을 도와주었다. 코흐에 의한 탄저병의 병원체인 탄저균 발견 뉴스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콘의 제자인 요제프 슈뢰터는 색소생성세균이 감자, 응고된 달걀 흰자위, 고기, 빵 등의 고체 물질에서 자라며 이러한 세균의 콜로니(colony)가 같은 종류의 유기체로 이루어진 같은 색깔의 새로운 콜로니를 형성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코흐가 몇 년 뒤 고안해낸 순수배양기법(pure-culture technique)의 출발점이었다. 병을 유발하는 유기체가 몸 밖에서 배양될 수 있다는 개념은 파스퇴르에 의해 도입된 것이지만, 완벽한 순수배양기법을 고안하여 유기체의 완전한 생활사를 밝혀주는 정확하고 정교한 실험을 한 것은 코흐였다. 탄저병 연구는 처음으로 특정한 질병과 특정한 세균과의 분명한 인과관계에 대해 확신할 만한 증거를 제공했다. 그 무렵 세균학 연구의 제1인자는 프랑스의 파스퇴르였다. 탄저균의 발견으로 코흐에게 선수를 놓친 파스퇴르는 1881년이 되어서야 탄저병 예방 접종 백신요법으로 코흐의 명성을 추월할 수 있었다.

코흐의 대 발견도 혈액응고에 대해 결정적인 연구를 한 루돌프 비르효(Rudolph Virchow) 교수로부터 문전박대를 받았다고 황상익은 적었다. 비르효는 세균병인설을 인정치 않았기 때문에 코흐가 논문을 갖고 찾아갔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891년 결국 비르효도 세균병인설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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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7 11:59 2009/03/1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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