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의학자] 파스퇴르 1 :: 2009/03/13 10:50
파스퇴르
Louis Pasteur
1822. 12. 27. ~ 1895.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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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화학자이며, 미생물학자이다.
1822년 12월 27일 프랑스 동부 산지에 위치한 쥐라 데파르트망(Department)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은퇴한 피혁상으로 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1842년에 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 수학과에 합격하였고, 대학 입학 후 물리와 화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후에 소르본 대학교가 되는 노매일 대학교에서 듀마스 교수의 강의에 자극을 받아 화학으로 전공을 정했다. 그리고 1846년부터 발라드의 조수로 화학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최초의 연구는 1848년 타르타르산(주석산)에 관한 것으로 타르타르산염과 파라타르타르산염의 구조상의 차이를 광회전성[旋光性]의 차이로부터 밝혀냈다. 주석산 결정의 선광성 연구는 유기 입체 화학과 결정물리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할 만한 내용으로, 이 연구 업적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이때부터 그의 학자로서의 입지가 갖추어졌다.
디종중학교 물리교사를 거쳐, 1849년 스물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트라스부르 대학 화학교수가 되었으며, 화학조성, 결정구조, 광학활성의 관계를 연구하는 등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연구들을 통해서 입체 화학분야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또한 생물이 입체이성질체의 한쪽만을 이용하여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주의 ‘비대칭성’을 논함과 동시에, 생명의 화학적 연구에 흥미를 가졌다.
1854년 신설된 릴 대학 화학교수 겸 이학부장(理學部長)을 지냈으며, 1857년 에콜 노르말 부주사(副主事)에 취임하였다.
1856년, 양조업자들이 자신들의 포도주가 쉽게 부패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고 부탁하면서 발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의 화학자들이 발효 현상을 화학 반응만으로 설명하려한 것과 달리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결국 알콜 발효는 효모균에 의해 발생하고, 비정상 발효는 젖산균과 같은 다른 미생물에 의한 것임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미생물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1861년에는 백조 목 모양의 플라스크 그림으로 유명한 실험을 통해 비등점에서 공기를 단절한 플라스크 안에서는 물질이 썩지 않음을 증명하였는데, 생물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자연발생설이 잘못된 학설임을 증명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미생물이 음식물을 상하게 하고, 질병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음식물의 변성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1863년 발표된 저온살균법이다. 발효가 끝난 포도주를 약 60도의 열로 한 시간 정도 가열하면 세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방식은 포도주의 맛과 향, 색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세균을 죽일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은 산업화하는데도 성공하여 프랑스 포도주의 맛과 질을 유명하게 하는 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현재도 식품, 우유, 맥주 등의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유지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포도주 산업의 구세주 파스퇴르에게 이번에는 식초업자들이 달려갔다. 파스퇴르는 포도주가 식초로 저절로 변하는 식초 통을 조사했고 이상하게 생긴 찌꺼기가 통 속 액체의 표면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파스퇴르는 나무 통 속에 있던 덩어리들이 수십억 개의 미생물덩어리라는 것을 알아냈다. 파스퇴르는 식초 업자들에게 포도주를 식초로 만드는 미생물들은 며칠 만에 자기들 몸무게의 1만 배가 되는 알코올을 먹고 그것을 식초로 바꾼다고 말했다. 또한 포도주에 산소를 넣으면 보다 효율적으로 식초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하여 식초업자들을 감격시켰다. 1862년 알코올에서 아세트산으로 변하는 것과 아세트산발효에 대해 연구하여 식초의 새로운 공업적 제법을 확립하였다.
1865년부터 J.A.뒤마의 의뢰를 받고 누에의 미립자병(微粒子病)과 연화병(軟化病)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끝에 감염된 병충의 알에 의한 전염 예방법 등을 발표하여 양잠업의 어려움까지 덜어 주었다. 이 연구를 통해 누에에게 발생하는 병이 병원미생물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고 예방대책을 마련하였다.
이 연구를 진행 중이던 1866년에는 <Etude sur le Vin (포도주의 발효)>을 출간하면서 발효의 종류와 미생물과의 관련성을 밝히고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1867년 소르본대학의 화학교수가 되었으나, 1868년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여기에서 파스퇴르의 연구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파스퇴르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그가 사망할 것을 예상해 새로운 실험실의 공사를 중단했다. 폴 드 크루이프는 파스퇴르가 실험실의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더 살기로 결심했다고 적었다. 물론 파스퇴르는 이 일로 몸의 한쪽이 마비되었고 평생 동안 불편한 몸으로 지냈다.
불편한 몸으로도 연구를 계속하여 1877년엔는 탄저병, 패혈증, 산욕열 등의 병원체를 밝혀 냈다.. 질병의 고통에서 차차 회복되어 가던 그는 1877년부터 자신의 관심을 인간과 고등동물에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의 해결로 전환하였다.
1879년 닭콜레라의 독력을 약화한 배양균을 닭에 주사하고 면역이 된다는 것을 발견, 이미 80여 년 전에 제너(Edward Jenner, 1749~1823)에 의해 발견된 두창(천연두) 예방접종법을 응용하여, 백신 접종에 의한 전염병 예방법의 일반화에 성공하였다.
1881년에는 양의 면역 실험에 성공하였고, 푸이 르포르에서의 야외실험으로 가축에 탄저병 백신을 접종하여 그 유효성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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