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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폭과의 전쟁  I

이 이야기는 1992년 꿈많은 초짜의사였던 응급실 인턴 때의 일이다.

응급실은 병원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인데, 지방병원에 파견  근무를 하던 어느 여름날 밤이였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가운을 벗어 놓고, 넥타이도 안메고 station에 있었다.

그러던 중 젋은 남자환자 4명이 human trouble 에 의한 좌상으로 응급실을 내원하였다.  상처는 그리 크지 않았는 데, 몇군데 긁히고, mild laceration이 몇군데 있는 정도 였다. 그 담당인턴이 바로 나였고...

그 환자들은 친구인 것처럼 보였으나,  그 친구들의 Morphology가 하나  같이 조폭과 같은 appearance를 보여주었다. 머리는 스포츠 형이며, 체형은 씨름  선수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열심히 태연한 척하면서 charting을 하면서 '빨리 charting 하고  노티해야지' 하고 생각 하며 환자들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응급실 문밖에서 차가 끼익 서는 소리와 함께 20여명이 넘는 건장한 체구의 사람들이 한손에 야구방망이, 일본도 비슷한 흉기 등을 들고 우루루 내리면서 외치는 것이었다.

" 어떤 새끼들이 우리 아이들을 건드렸어 ! "

그리고 잠시후 '우당땅 꿍탕' 하는  소리와 함께 죽이라는 등  응급실은 난장판이 되어갔다. 그리고 온갖 육두문자가 들려오는 가운데 유리창 깨지는 소리, 비명소리, 야구방망이와 사람이 정면으로 부딫치면서 나는 둔탁한 소리들...

그 순간 나는 '야 큰일이다. 빨리  경찰에 신고해야지' 생각하고 간호사들이 있는 station으로 몸을 돌리면서 "간호사" 하고 외쳤는 데...

너무 황당하였다. 주변에 그 많던 간호사, 레지던트, 원무과  직원들 모두 사라지고 나 혼자만이 부들부들 떨면서 한손에 차트를 들고, 또한 손에 볼펜을  들고 그 넓은 응급실에 덩그러니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의 망연자실이란..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도망가기도 싫었고,  도망 갈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무책상  사이에 양복바지가 낑겨서 내가 움직이니까 책상도 움직였기 때문에...

그러고 있는 사이에 응급실은 갑자기 조용해지며 적막해짐과 동시에,  책상 앞에 서서 가운을 입고 있지 않는 나에게로 야구방망이를 든 사람이 오더니 말했다.

" 당신 의사야 ? "

나는 얌전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 네"
"의사 정말 맞어 ? 의사가운이 안입었자너 ?"
"네 그래도 의사 맞습니다...........o "

하고 대답하고 다음말을 기다렸다.

" 저 놈들 잘 치료해줘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은 더 험한 표정과 심한 욕설로 뒤범벅이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고 나는 최대한  공손한 상태로 대답하였다)

그 순간 다시 돌아보니 처음에 걸어 들어 왔던 4명의 남자들이 coma에 가까운 상태로 응급실 여기 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다. 처음에 왔던 그 남자들은  도망가기도 하고 갑자기 짧은 칼을 꺼내기도 하면서 대항하기도 하였지만  숫적인 열세로 대부분 죽어라 얻어  맞고 경상이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ICU care(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나는 병원 수입증가에 도움이 되는 환자유치를 내손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뒤에 온 그들은 가지고 온 차를 타고 모두다 가버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경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고, 어디론가 없어졌던 직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후 갑자기  늘어나 중환자 처리를 위해 분주하게 일하던 중 응급실 간호사중 한명이 나한테 말했다.

"김 선생님 그 때 왜 도망 안갔어요 ?  용감하시던데요. 깡패랑 정답게 이야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아무말도 하지를 못했다. 아니 일부러 이야기를 안했다. 할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선 이런일이 일어나면 잽싸게 도망을 가야 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반드시 가운을 입고 병원 근무를 하였다. 더운 여름에 땀띠가 나도 말이다...

그리고  그 후 응급실에는 CCTV 녹화장치와 청원 경찰이 배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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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alf stitch out

PK들도 실습을 돌면서 많은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지방병원으로 실습을 나가는 우리 병원 PK들은 1주일 정도 지방 중소 병원에 가서 지낼 경우가 있었다. 그 곳은 평소 환자도 그리 많지 않고, PK들로써는 서울 본원과 같이 구경꾼의 역활이 아닌, 예비의사로써 마음껏 폼을 잡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잘 모르니까?) 그리고 인턴 숙소에서 잠을 자게 되는데 여기에는  친한 선배들이 레지던트로 가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일반외과 레지던트 1년차와 친한 PK가 그 병원으로 실습 초기에 가게 됐는데.. 이곳에서 불쌍한 1년차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후배로써 존경하는 선배를 도와주어야겠다는 진한 의리감에

"형! 제가 뭐 도와드릴 것 없어요"
"없어. 네가 할 것이 뭐있겠니?"
"아니!! 형 나를 뭘로 보는거야. 그래도 비록 한바늘이지만 suture도 해보고.. 할 것은 다 해봤어요"
"음 그럼 314호에 김00 환자가  있는데 그 분 panperi로  수술한 분이거든 오늘 half  stitch out하실 분이니까. station에 가서 needle 달라고 해서 half stitch out 좀 해라. 나 응급실 콜 있어서 가봐야해.. 잘 할 수 있지."
"그럼요 그 정도야.."

자신있게 대답한 PK는 씩씩하게 station에 가서 'stitch  out 하게 needle 주세요' 하고 314호에 가서 half stitch out을 했다. 그리고 응급실에 전화하여 GS R1 선배에게 잘했다고  이야기하고 친절하게 그런 기회를 준 것에 대한 감사의  공치사까지 하고 전화통화를 끝냈다.그리고 가서 잤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회진시간에 staff랑 회진을 돌던 일반외과 의국원은 모두 뒤집어졌다.

그 PK가 정확하게 suture line의 반을 나누어 stitch out을 해 놓았기 때문이다.

%% 원래 half stitch out은 교대로 실밥을 잘라내는 것인데 위의 PK는 suture line의 반을 말 그대로 half stitch out을 해 버려서 상처가 아침에 그 쪽으로 쫙 벌어져서 그 환자는 다시 suture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레지던트는 끌려가서 한밤의 곡소리를 내야 했고 그 후 그 PK는 그 선배를 한동안 피해서 병원을 다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