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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매체에서 신종플루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잘 못될 것처럼 난리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치사율은 0.07-0.08%입니다....
관련기사는 바로 밑에..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090830070207061&p=yonhap&RIGHT_COMM=R1

실제로 임상에서 의사들이 보기에는 계절독감으로 인한 사망율보다 적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면 신종플루로 생각하여 많이들 걱정하시고 계십니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 새로운 병원체이고 인류가 이것에 대한 방어능력 백신이던 치료약이던... 뭐든지 아직은 가지고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걸리고 나빠질 지 모르는 점때문에 두려워 한다는 점이지요... 또한 대유행이라고 선언된 지금 앞으로 가을 겨울이 지나 내년 따뜻한 봄이 되기전까지 얼마나 확산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 참으로 사람을 두렵게 합니다. 대책은 손씻기 밖에 없으니...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이런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상상력이 있어서 두려워 하는 것이다"

정말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어떻게던지....이것을 피해가기 위해 노력하는 데 이러한 대유행의 전염병은 나라에서 콘트롤을 해야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그것에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두고 두고 비난 받아서 마땅할 것입니다.

또한 올해 계절 백신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1000만도즈 밖에 가져 오지 못하는 이러한 백신 주권국가 아닌 종속국가라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이겠지요... 아직은 후진국에 사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조가 정말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시급한 것이 있지만 자주 국방에 이어 보건 국방 역시 중요한 국가의 기능인데 제발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년에는 보건 자주 국방의 백신자주권을 획득하여 매년 백신 때문에 시달리는 질병에 시달리는 그런일이 없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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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에 의해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토끼의 척수신경조직을 탈수 건조시켜 불활성화시킨 백신이 최초로 개발된 후 이와 유사한 공수병 감염 동물 뇌조직 사백신이 70년 넘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문제점들이 개선된 새로운 백신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HDCV

β-Propiolactone 불활성화

인 섬유모세포

고가격, 추가 접종시

과민반응 발현 가능

RVA

β-Propiolactone 불활성화

fetal rehsus

면역 과민반응 감소

PHK

Formalin 불활성화

pimary syrian hamster

중국에서만 사용

PDEV

β-Propiolactone 불활성화

Duck embryo

초고속 순수분리



광견병 예방접종은 광견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수의사, 가축 또는 동물 사육사, 광견병 바이러스 연구소 및 검사실 요원, 광견병 유행지역의 거주자(특히 소아) 및 군인 그리고 유행지역 여행자들(30일 이상 체류자)들에게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개에 물렸울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개가 광견병 예방접종을 맞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사람을 문 개를 약 10일간 관찰하는 동안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상처만 치료합니다. 개에 물린 상처는 즉시 비누와 물로 잘 씻어낸 후 70% 알코올이나 1% benzalkonium 용액으로 소독합니다.

다음과 같은 때에는 광견병 면역글로블린과 예방백신을 같이 접종합니다.
1. 사람을 문 개에게 10일 내에 광견병이 발병한 경우
2. 개가 광견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된다.
3. 개를 찾을 수 없는 경우

1) 면역 글로블린 : HRIG (Human Hyperimmune Rabies Immunoglobulin)을 체중 Kg당 20 단위를, 반은 물린 부위에, 반은 근육 내에 주사합니다.
2) 예방백신 : HDCV 백신 (Human Diploid Cell Vaccine) 1ml를 제 1, 3, 7, 14, 28일에 근육주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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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업적을 치하하여 1886년부터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오늘날에도 파리 시내에 우뚝 서서 세계의학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파스퇴르 연구소가 1888년 11월에 준공식을 가졌다. 파스퇴르는 이 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취임하였다.

연구소가 한참 건설 중이던 1887년 파스퇴르는 두 번째로 뇌졸중이 발생하여 다시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더 이상의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워졌으며, 대통령의 부축을 받아 참석한 1892년의 70회 생일 축하연에서는 그의 아들이 답사를 대독할 정도로 급격히 쇠퇴해 갔다. 1895년 9월 28일, 73세를 일기로 그 시대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그는 파스퇴르 연구소의 지하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다.

그의 연구와 실험 정신은 사후까지도 남아 파스퇴르 연구소는 창립 이래 100년간 수많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고 뛰어난 과학자들을 배출하였다. 인류가 지금처럼 보다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기여한 것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는 광견병으로 사망했어야 마땅한 메스테르는 사지에서 벗어난 후 파스퇴르를 공경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파스퇴르 연구소가 문을 열던 해에 중학생이 된 메스테르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었으나 성적이 떨어지는 일이 있어도 파스퇴르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은 결코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프랑스가 자랑하던 마지노선을 피하여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로 들어온 후 일사천리로 전진을 계속하여 파리를 점령하였다. 각종 중요 기관을 점령한 독일군은 파스퇴르 연구소를 찾아가 인수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연구소를 지키던 수위가 지하실 문은 절대로 열어줄 수 없다며 버티는 바람에 인수작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앞에 총칼이 다가서는 것을 본 수위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적의 손에 죽느니 차라리 자살을 선택하였다. 파스퇴르의 묘지가 있는 지하실로 독일군이 들어가는 일을 막으려다 죽음을 택한 그의 이름은 메스테르였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파스퇴르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상은 1901년에 첫 수상자가 배출되었는데, 파스퇴르는 1895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원칙적으로 사망한 사람에게 수여하지 않으며 그 원칙은 지금까지 특별한 예외(다글러스 함마슐트가 사망한 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음)를 제외하고 지켜지고 있다.

파스퇴르가 다른 과학자들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생애를 일관했던 실학주의가 실제로 수많은 업적으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학교에 성실했던 그는 대학에서 배우고 가르칠 이론이 실제로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실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생산자들의 상담에 최선을 다했다. 그에게 자문을 받은 내용은 프랑스의 토지나 특성, 농업에 관한 것이 주였지만 자문을 받은 주제를 성실히 파헤치면서 위대한 발견을 한 행운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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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12번 노선의 파스퇴르역, 6번 노선과 교차한다)

<세균에 의한 질병의 전염성이 입증되다>

프랑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화학보다도 미생물학의 업적으로 더 유명하다. 처음에는 화학자였으나 여러 가지 세균에 관한 연구와 발견들로 인해 그의 명성이 드높아진 때문이다. 그는 와인이나 맥주의 제조에 매우 중요한 '발효와 음식물의 부패'에 대한 연구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고안한 우유의 저온 살균법은 그의 이름을 그대로 빌어 파스퇴르법이라 불리우며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또 그는 상처의 감염과 전염병 등이 모두 세균의 작용임을 처음으로 증명하였는데, 그것은 외과 수술에 혁명을 몰고 왔고 프랑스의 양잠업을 구하였으며, 그가 개발한 광견병 백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서 구해 냈다.

특히 세균의 전염에 관한 파스퇴르의 연구 결과는 독일의 과학자 로버트 코치에게로 이어졌고, 1882년에 코치는 결핵의 원인이 되는 세균 발견 보고서를 발표함으로써 질병의 전염성을 증명하였다. 이때 어떤 한 세균과 특별한 질병과의 연계에 대한 아주 중요하고도 정확한 가정이 함께 발표되었는데, 이는 지금도 의학계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코치와 코치의 발견을 낳게 한 파스퇴르의 업적은 미생물 과학을 선도하였고, 면역학, 공중 위생과 위생학의 진보를 이끌었다. 이것은 지난 1000년 동안 다른 어떤 과학적 진전보다도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더 많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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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에서 파스퇴르까지>

고대인들은 사람이 질병에 걸리는 이유는 신의 저주를 받았거나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여 주술사의 힘을 빌어 질병을 퇴치하려 했다.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0년)는 질병의 원인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기질 체액론'을 도입한 이천년이 지나도록 그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으며 17세기에 레베후크가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발견하였음에도 질병과 미생물과의 관계를 밝혀 내지 못하였다.

1820년 당시 영국의 템즈 강이 오수로 흘러 넘쳐지만 런던의 상인들은 강물을 식수로 판매할 정도로 질병의 원인을 밝혀 내지 못하다가 현미경의 발명 이후 200년이 지나서야 1861년 파스퇴르의 연구에 의해 미생물의 자연 발생설은 부정되고 인류에게 질병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찾아지게 된 것이다



<광견병 백신의 개발과 연구의 윤리성>

광견병 백신을 개발하기는 하였으나 안전성에 대한 충분한 검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와 함께 파스퇴르를 찾아 왔던 어린 소년은 당시 9세의 메스테르(Joseph Meister)였다.

오늘날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당연히 기관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윤리위원회 소집시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며, 그 위원회에 제출하기 위한 수십 쪽의 서류를 꾸며야 할 것이다. 이를 행하지 않고 환자에게 처리했다가는 윤리성을 검증하는 도마에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논문으로 출판되기도 어려우므로 누군가 자신을 모방하는 연구자에게 업적경쟁에서 뒤질 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결코 120여 년 전의 일만이 아니고, 고아원에서 임상시험을 한 첫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베링(Emil Adolf von Behring, 1854~1927)으로부터 최근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마샬(Barry J. Marshall, 1951~ , 헬리코박터균 발견으로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임상시험을 통해 얻어진 훌륭한 의학적 업적이 많이 있다.

<조국이 우선인 파스퇴르와 코흐>

파스퇴르는 1892년 70세 생일날 파리의 소르본대학에서 메달을 수여받으면서 다음과 같이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무 쓸모없는 회의론에 빠져 여러분 자신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전 인류에게 닥친 슬픔 때문에 여러분 자신이 낙담하지 않도록 하는 대신에 실험실과 도서관의 고요한 평화 속에서 사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배움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지 질문하십시오. 그리고 점차 발전하면서 조국을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물으십시오.”

파스퇴르의 이러한 연구와 국가관은 당연하게 여러 분야에서 서로 경쟁하는 사이인 코흐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학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조국이 독일과 프랑스였기 때문이다.

1870~71년 프랑스와 프러시아(독일) 간의 전쟁은 비스마르크가 위대한 독일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다. 비스마르크의 기갑부대는 8월 국경을 넘어 파죽지세로 알자스로 진입했고 9월에는 스당 전투에서 나폴레옹 3세의 군대를 격파하고 파리를 포위한다. 그러자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말로 아들과 함께 곧바로 지원병을 자청하여 그가 말뿐인 애국자가 아님을 증명했다. 물론 48세의 나이 때문에 아들만 입대하였지만 그 후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도 연구를 계속했다는 일화도 있다.

파리는 함락되지 않았지만 양국 간에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프랑스는 독일에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자 파스퇴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프랑스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사력을 다할 때까지 저항하기를 원한다. 최후의 날까지 나의 모든 노력은 ‘프러시아에 대한 증오, 복수, 복수!’ 라는 비명에 남을 것이다”

또한 파스퇴르는 1871년 1월, 미생물학에 대한 업적으로 독일 본 대학에서 받은 명예 의학 박사 학위를 돌려주며 “야만과 위선이 프랑스 과학자에게 주입한 분노의 표현으로 당신 대학의 기록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이 학위증을 돌려주기를 요구하는 양심의 부름에 따른다”고 적었다..

<참고>

1. Naver

2. 브리태니커

3.http://blog.paran.com/blog/detail/postBoard.kth?pmcId=charmsarang&blogDataId=29571781

4. 이종호의 과학이 만드는 세상-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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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1882년 당시 광견병의 예방적 치료를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광견병은 흔한 병은 아니지만 무서운 증세 때문에 매우 잘 알려져 있었다. 광견병은 광견병에 걸린 개나 늑대에게 물린 후 한 달 또는 그 이상이 지나야 나타나는데 그 병은 신경계에 침입해서 불안, 거친 행동, 발작, 마비를 일으키며 100% 사망한다. 환자들이 종종 물을 보고 두려움을 표현해서 공수병(恐水病)으로도 불린다. 당시에는 광견병 환자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고의로 죽이는 일도 종종 있었다.

광견병은 당시에 문제가 되고 있던 질병의 하나였지만 현미경으로 병원체를 찾을 수 없었으므로 연구과정은 쉬울 수가 없었다. 닭콜레라와 탄저의 원인균이 세균이므로 현미경으로 관찰 가능했던 것과 달리 광견병은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므로 당시의 현미경으로는 관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바이러스의 배양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앞선 두 가지 백신보다는 훨씬 개발이 어려운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파스퇴르는 미친개를 건강한 개들이 있는 큰 우리에 넣고 다른 개를 물게 만들었다. 또한 미친개의 타액을 주시기로 뽑아 토끼와 기니피그에 주사했다. 그런데 실험 결과는 엉망이었다. 건강한 네 마리의 개가 미친개에게 물렸는데 두 마리는 공수병에 걸렸지만 나머지 두 마리는 멀쩡했다. 기니피그와 토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수병에 걸리는 것도 있고 걸리지 않는 것도 있었다.

파스퇴르는 그 이유를 생각하면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떠 올렸다.

‘공수병균은 물린 상처를 통해서만 사람들의 몸속에 들어가고 뇌와 척수에 자리를 잡는 것 같다. 공수병의 증상을 보면 균이 신경계를 공격하는 것이 틀림없다. 또한 우리들이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신경에서 그것들을 배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배양액 대신 살아 있는 동물의 뇌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그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광견병에 걸린 개에서 얻은 혈액, 침 등의 추출물을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그는 토끼의 뇌에 주입하여 토끼에서 광견병을 인공적으로 발생시키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며 그 후의 연구에서 토끼에 주입된 미지의 이 미생물은 척수에서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미경으로 원인균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병원체가 포함된 물질을 찾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학자들은 미생물 사냥과 과학의 역사상 파스퇴르의 이 아이디어처럼 비과학적인 실험은 없다고 말한다

다음은 이 병원체를 약독화시킬 차례였다. 시행착오 끝에 토끼의 척수에서 이 바이러스의 독성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파스퇴르는 광견병으로 죽은 토끼의 척수를 수 센티미터 길이로 잘라 공기 중에서 건조시키면 독성이 서서히 약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끼의 척수를 일정한 크기로 자른 다음 14일간 공기 중에 보관해 두었다가 정상적인 개에 투여하였고, 그 개에서는 광견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다음으로 공기 중에 1일부터 14일까지 보관한 각각의 척수를 차례로 개에게 투여하여 시간 경과에 따른 광견병 원인 바이러스의 독성을 측정하였다. 어렸을 때 광견병 개에 물린 어린이들을 대장간에서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것을 보고 이 방면의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던 어린 과학자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광견병은 잠복기가 아주 긴 질환이므로 개에 물린 후에 백신을 주사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파스퇴르의 기대에 걸맞게 이 백신은 일단 감염된 후에도 빠른 시간에 투여하기만 하면 그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광견병 예방백신의 임상 실험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까지는 광견병에 걸리면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므로 동물실험에 성공했다고 해서 사람에게 실험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부작용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다. 백신이 개발 후 시간만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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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를 향한 파스퇴르의 끝없는 노력은 1885년, 광견병 예방주사 개발로 이어진다. 1885년 7월 6일, 광견병 개에 물린 조제프 메스테르라는 9세 된 소년이 엄마와 함께 파스퇴르를 찾아 왔다. 아들을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파스퇴르가 광견병 백신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그의 백신을 놓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시험이 끝나지 않은 광견병 백신을 사용하는 것은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모르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으므로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어머니의 간청과 주변 과학자들의 격려에 의해 파스퇴르는 자신이 만든 광견병 백신을 약한 것부터 강한 것으로 바꾸어 가면서 14회에 걸쳐 접종을 했고, 그 어린 소년은 7월 27일에 건강한 얼굴로 퇴원을 했다. 이 소년은 건강하게 자라났으며, 광견병 백신개발의 성공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마이스터를 비롯해 1895년 파스퇴르가 사망할 때까지 약 2만 명의 환자가 백신 치료를 받았는데 그 중에서 사망한 사람은 100명 이하였다. 파스퇴르에 의해 광견병 치료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심어졌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1932년 독일의 크놀과 루스카에 의해 발견되었다.

파스퇴르는 제너의 면역 요법을 모든 일반 병원체에 적용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아마비, 독감, 황열병 등 병원체가 발견되지 않은 병도 반드시 병원체가 있다고 믿었으며 백신을 만들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던 중 실제로 광견병 백신 제조에 성공한 것이다.

파스퇴르와 제너의 백신은 제조 방법이 다르다. 광견병 백신은 광견병에 감염한 환자들로부터 채취한 미지의 병원체를 토끼의 척추에 이식시키고 그것을 건조시켜서 만들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실제의 광견병 바이러스보다 약한 독성을 가졌으며 광견에 물려서 잠복기에 있는 동안에 주사하면 항체가 생기므로 본래의 광견병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이다.

반면에 제너의 종두법은 우두 바이러스의 항체로 천연두의 바이러스를 죽이는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종이 다른 병원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파스퇴르가 한 방법은 진짜 병원체의 독성을 약하게 한 것을 접종하는 것으로 인체에 강제적으로 항체를 만들게 하고 그것으로 침입한 바이러스를 죽이는 방법이었다. 파스퇴르는 ‘병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오늘날의 상식이자 과학적인 사고를 확립했다. 이로써 유럽은 중세로부터 이어온 신비주의와 드디어 결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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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

Louis Pasteur

1822. 12. 27. ~ 1895.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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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퇴르 메디칼센터...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더군요)


프랑스의 화학자이며, 미생물학자이다.

1822년 12월 27일 프랑스 동부 산지에 위치한 쥐라 데파르트망(Department)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은퇴한 피혁상으로 그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것이다.

1842년에 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 수학과에 합격하였고, 대학 입학 후 물리와 화학에 관심을 두었으며, 후에 소르본 대학교가 되는 노매일 대학교에서 듀마스 교수의 강의에 자극을 받아 화학으로 전공을 정했다. 그리고 1846년부터 발라드의 조수로 화학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최초의 연구는 1848년 타르타르산(주석산)에 관한 것으로 타르타르산염과 파라타르타르산염의 구조상의 차이를 광회전성[旋光性]의 차이로부터 밝혀냈다. 주석산 결정의 선광성 연구는 유기 입체 화학과 결정물리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할 만한 내용으로, 이 연구 업적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이때부터 그의 학자로서의 입지가 갖추어졌다.

디종중학교 물리교사를 거쳐, 1849년 스물일곱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스트라스부르 대학 화학교수가 되었으며, 화학조성, 결정구조, 광학활성의 관계를 연구하는 등 학생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연구들을 통해서 입체 화학분야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또한 생물이 입체이성질체의 한쪽만을 이용하여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주의 ‘비대칭성’을 논함과 동시에, 생명의 화학적 연구에 흥미를 가졌다.

1854년 신설된 릴 대학 화학교수 겸 이학부장(理學部長)을 지냈으며, 1857년 에콜 노르말 부주사(副主事)에 취임하였다.

1856년, 양조업자들이 자신들의 포도주가 쉽게 부패하는 이유를 알려 달라고 부탁하면서 발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의 화학자들이 발효 현상을 화학 반응만으로 설명하려한 것과 달리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결국 알콜 발효는 효모균에 의해 발생하고, 비정상 발효는 젖산균과 같은 다른 미생물에 의한 것임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그는 미생물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고, 1861년에는 백조 목 모양의 플라스크 그림으로 유명한 실험을 통해 비등점에서 공기를 단절한 플라스크 안에서는 물질이 썩지 않음을 증명하였는데, 생물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는 자연발생설이 잘못된 학설임을 증명하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미생물이 음식물을 상하게 하고, 질병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음식물의 변성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1863년 발표된 저온살균법이다. 발효가 끝난 포도주를 약 60도의 열로 한 시간 정도 가열하면 세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방식은 포도주의 맛과 향, 색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세균을 죽일 수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은 산업화하는데도 성공하여 프랑스 포도주의 맛과 질을 유명하게 하는 데 크게 일조하였으며 현재도 식품, 우유, 맥주 등의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유지하는데 이용되고 있다.

포도주 산업의 구세주 파스퇴르에게 이번에는 식초업자들이 달려갔다. 파스퇴르는 포도주가 식초로 저절로 변하는 식초 통을 조사했고 이상하게 생긴 찌꺼기가 통 속 액체의 표면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파스퇴르는 나무 통 속에 있던 덩어리들이 수십억 개의 미생물덩어리라는 것을 알아냈다. 파스퇴르는 식초 업자들에게 포도주를 식초로 만드는 미생물들은 며칠 만에 자기들 몸무게의 1만 배가 되는 알코올을 먹고 그것을 식초로 바꾼다고 말했다. 또한 포도주에 산소를 넣으면 보다 효율적으로 식초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하여 식초업자들을 감격시켰다. 1862년 알코올에서 아세트산으로 변하는 것과 아세트산발효에 대해 연구하여 식초의 새로운 공업적 제법을 확립하였다.

1865년부터 J.A.뒤마의 의뢰를 받고 누에의 미립자병(微粒子病)과 연화병(軟化病)에 대한 연구를 계속한 끝에 감염된 병충의 알에 의한 전염 예방법 등을 발표하여 양잠업의 어려움까지 덜어 주었다. 이 연구를 통해 누에에게 발생하는 병이 병원미생물에 의한 것임을 밝혀내고 예방대책을 마련하였다.

이 연구를 진행 중이던 1866년에는 <Etude sur le Vin (포도주의 발효)>을 출간하면서 발효의 종류와 미생물과의 관련성을 밝히고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1867년 소르본대학의 화학교수가 되었으나, 1868년 뇌출혈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지만 여기에서 파스퇴르의 연구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파스퇴르가 뇌출혈로 쓰러지자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그가 사망할 것을 예상해 새로운 실험실의 공사를 중단했다. 폴 드 크루이프는 파스퇴르가 실험실의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더 살기로 결심했다고 적었다. 물론 파스퇴르는 이 일로 몸의 한쪽이 마비되었고 평생 동안 불편한 몸으로 지냈다.

불편한 몸으로도 연구를 계속하여 1877년엔는 탄저병, 패혈증, 산욕열 등의 병원체를 밝혀 냈다.. 질병의 고통에서 차차 회복되어 가던 그는 1877년부터 자신의 관심을 인간과 고등동물에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의 해결로 전환하였다.

1879년 닭콜레라의 독력을 약화한 배양균을 닭에 주사하고 면역이 된다는 것을 발견, 이미 80여 년 전에 제너(Edward Jenner, 1749~1823)에 의해 발견된 두창(천연두) 예방접종법을 응용하여, 백신 접종에 의한 전염병 예방법의 일반화에 성공하였다.

1881년에는 양의 면역 실험에 성공하였고, 푸이 르포르에서의 야외실험으로 가축에 탄저병 백신을 접종하여 그 유효성을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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